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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복주머니는 조부모님께 세뱃돈을 받을 때나 만지던 것이다. 대통령을 만나 복주머니를 건넨다?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살면서 그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그런 존재를 만나 그의 복을 기원하는 상황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오래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동아리 선배와 이야기하던 도중, 나는 공책에 ‘삶=Normality’라는 공식을 쓰며 말했다.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요즘은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해.” 코스피종목
그는 나의 ‘Norm’ 위에 선을 긋고, 그 아래 ‘Ban’이라고 적었다. “Banality.”(따분함, 시시함) “뭐래, 삶은 그냥 시시한 거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는 멋들어진 말을 달고 다녔던 철학과 선배를 좋아했다. 항상 고전을 탐독하던 그처럼 나도 멋진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세월호 지겹다는 시민 꾸짖던 첫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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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탐구하는 것이 곧 그를 탐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세기의 작가라 불리는 이 사람들은 알고 보면 당혹스러운 점이 많았다. 발자크,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의 평전에서 그들의 생애는 대체로 나를 실망하게 했다. 내가 사랑하는 헤밍웨이도 엄청난 술주정뱅이에다 폭력적이고 구제 불능의 인간이었다. 점점 세상이, 사실은 별 볼 백경 게임
일 없는 사람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배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그를, 가끔 술자리에 나와 자신만이 알아듣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그 정도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세상이 대단치 않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은 멀리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쉽게 오해하곤 한오늘의테마주
다. 난 오랫동안 부모님을 존경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참 이상해 보인다. 많은 책을 탐독하는 딸은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아버지는 ‘정의’ 같은 가치는 안중에 없다.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어머니는 여성 인권에 관심 없는 집단을 지지한다. 어느 문인의 말처럼,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한 음바다이야기백경
모뿐이 아니라 혼동과 오해’ 또한 그렇다.
이른 대선을 치르고 우리 집안은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이른바 ‘좌파’ 대통령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불온한’ 딸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했다.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세월호 리본이 ‘지겹다’고 말하는 시민을 단호히 꾸짖는 모습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몇 해가 지나 인생 첫 대선 투표를 했다.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각종 이슈를 통해 다시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 대통령이 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어딘가 조금은 비범하고 어딘가 조금은 어긋난 평범한 인간이 내 앞에 있다.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
각자의 짧은 생에서 우리는 상대의 비범함만을, 혹은 어긋남만을 보게 될 수도 있다. 평범한 인간들이 모여 대단히 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간다. 알고 나면 꽤 시시해서 괴로워지는 삶들이다. 그래도 ‘혼동과 오해’ 속에서 삶을 버티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서로를 사랑할 가능성과 같은 것이다. 다행히 이해는 사랑의 전제가 아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남루할 뿐이었던 젊은 대학생도, 서로를 가장 잘 알지만 동시에 가장 모르는 가족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사랑은 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한 문인들의 이야기를 복주머니에 담아본다. 이 정도의 평범하고 시시한 복이, 아마도 내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것이겠다.
첫째, ‘이십억 명의 사람이 이십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십억 개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이언 매큐언 ‘속죄’ 중
둘째,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셋째,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김은국 ‘순교자’ 중
임지우 ljw3109@gmail.com
선정하며- 대통령에게 건넬 세 개의 복주머니
‘코스피 5000’ 공약을 둘러싼 주가의 오르내림 속에서 메시아주의 정치의 실루엣을 본다. 대중은 대통령 교체로 얻을 수 있는 일상의 효능감을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싶어 하고, 언론은 맞장구치며 부추기는 데 급급하다. 대선 전에 아무리 흠결 많은 후보로 보였다 해도 상관없다. 당선되는 순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선출된 왕’이다. 입은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으론 “백마 타고 온 초인이었으면” 한다. 우리는 여전히 1960~1970년대 고도성장을 이끈 건 ‘박정희’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전태일들’이 경제성장의 진짜 주역이었다고 여기는 이는 소수다.
복주머니는 영웅 서사에 등장한다. 영웅이 절대 위기에 처했을 때 기댈 수 있는 긴급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를 흉내 내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에게 3개의 복주머니를 건넨 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다. 초고속으로 만들어낸 가짜 영웅은 지금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미지의 소리 15회차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복주머니를 준다면 어떤 메시지를 담겠느냐’고 물었다. 엠제트(MZ) 세대가 기겁할 주제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주저되는데, 복주머니를 주라니! 선정작을 쓴 임지우씨 역시 “그의 복을 기원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대통령 이재명은 ‘메시아’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어딘가 조금은 비범하고 어딘가 조금은 어긋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복은 “평범하고 시시한 것”이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임지우씨의 통찰이 정치적 효능감의 전면 부정은 아닐 테다. 우리는 때마다 어떤 정치인 대신 다른 어떤 정치인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알려준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107년간 미국 정부가 매년 발표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공화당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살인율과 자살률이 급증했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살인율과 자살률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실업, 불평등, 불황에 대처하는 집권당의 정책 차이에서 비롯한 결과였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시민의 시선이 주목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일러준다.
김창석 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다음 주제: ‘내가 편의점을 싫어하는 또는 좋아하는 이유’
분량: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2025년 9월28일 밤 12시
발표: 제1584호
문의·접수: leejw@hani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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